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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1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뒤 요동,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에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박지원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열하는 건륭황제가 별궁을 건설하면서 북경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연암은 사행 기간 동안 청국의 학자를 비롯해 몽골과 티베트 사람까지 접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를 접하고 귀국 후 그동안 오랑캐로만 치부하였던 청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상을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 소개한다. 열하일기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그 문체에서도 파격적이면서 직접적이고, 해학적으로 조선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 뒤 요동,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에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박지원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열하는 건륭황제가 별궁을 건설하면서 북경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연암은 사행 기간 동안 청국의 학자를 비롯해 몽골과 티베트 사람까지 접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를 접하고 귀국 후 그동안 오랑캐로만 치부하였던 청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상을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 소개한다. 열하일기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그 문체에서도 파격적이면서 직접적이고, 해학적으로 조선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은이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조선 후기의 저명한 작가이자 실학자로, 호는 연암(燕巖)이다.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약관의 나이에 문명을 떨침으로서 장래 나라의 문운을 잡을 인물로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혼탁한 정치현실과 양반사회의 타락상을 혐오해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오랫동안 재야의 선비로 지내면서 창작과 학문에만 전념했다. 1780년 친족형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兼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하여 요동 · 열하 · 북경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보고 귀국 후,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조선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50대 이후 비로소 벼슬길에 나서 안의현감,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했다. 홍대용 ·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에는, 『열하일기』와 『과농소초(課農小抄)』 외에 「양반전」과 「열녀함양박씨전」 등의 한문소설을 포함한 주옥같은 산문과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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